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램버스가 자사의 특허기술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하이닉스반도체에 로열티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는 외신보도에 하이닉스 주가가 크게 출렁거렸다. 종가 기준으로 2.3% 하락에 그쳤지만 장중 한때 5% 이상 떨어지기도 했다.
특허소송을 제기한 지 6년이나 지난 상태에서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내용인데도 투자자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하이닉스 측도 다소 당황했다.
김정수 하이닉스 IR팀장은 "외신의 보도내용은 2차 공판을 앞두고 램버스 측 변호사의 주장을 전한 것일 뿐"이라며 "따지고 보면 소송은 우리가 먼저 제기한 것이며 특허소송의 관행상 중간에 협상을 벌일 여지도 없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장이 특허소송을 제기한 측의 의도나 소송이 미칠 파장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진짜 특허료를 받아내겠다는 뜻인지,아니면 소송을 통해 특허료 협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심산인지,그것도 아니면 그저 경쟁사의 발목을 잡아보겠다는 속셈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고도의 두뇌게임
연초에 소니에릭슨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한 배경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장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모토로라와는 지난해 크로스라이선스(특허 상호공유) 체결로 안전장치를 마련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소송이 제기됐다"며 "아직 상대측 주장의 진위나 의도를 몰라 대응방식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허분쟁은 관련 기업들 간에 고도의 두뇌게임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플래시메모리와 관련한 특허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일본 도시바는 플래시메모리 세계 1위 업체인 삼성전자는 제쳐놓고 지난해 하이닉스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서는 특허료로 매출액의 몇 %를 달라는 협상을 물밑에서 전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플래시메모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샌디스크도 도시바-하이닉스의 협상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1992년 도시바와 반도체 분야에서 크로스라이선스를 체결해둔 상황이었지만 2002년 샌디스크에 일정액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특허기술 사용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하이닉스는 도시바와의 1차전에서 밀리면 샌디스크와의 2차전에서도 입지가 약화될 것으로 보고 최대한 버티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전쟁이냐 평화냐
삼성SDI와 마쓰시타가 PDP 모듈 분야의 특허를 놓고 맞제소를 벌이고 있는 것도 복잡한 상황의 산물이다.
PDP TV 분야의 세계 1위 업체인 마쓰시타는 2004년 경쟁사인 LG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밀고당기는 협상 끝에 지난해 5월 크로스 라이선스로 분쟁을 마무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말 삼성SDI가 돌연 마쓰시타에 소송을 걸고 나왔다.
마쓰시타의 특허료 지급요구를 선제적으로 견제하고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마쓰시타는 맞소송으로 즉각 반격에 나섰지만 크로스 라이선스 체결을 위한 물밑 접촉도 진행되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 어느 전쟁보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많은 곳이 특허전쟁인 셈이다.
물론 하이닉스와 램버스처럼 쌍방 간에 수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6년이나 소송을 진행한다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최종 재판결과를 기다려볼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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